까르띠에 역사와 인물 이야기|루이 까르띠에·잔 투생 그리고 리치몬트 그룹의 인수
까르띠에 역사와 인물 이야기|루이 까르띠에·잔 투생 그리고 리치몬트 그룹의 인수
까르띠에 역사와 인물 이야기|루이 까르띠에·잔 투생 그리고 리치몬트 그룹의 인수
안녕하세요. 시크님들.
하해탈입니다.
오늘은 까르띠에의 역사와 주요 인물, 재밌는 일화를 주제로 떠들어 보겠습니다.
오늘의 주제 미리 보기
제 보석함 속 까르띠에💕
'왕의 보석상, 보석상의 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까르띠에.
사실 주얼리에 눈뜨기 전에는 경영 관련 리포트 레퍼런스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요.
주얼리를 사랑하게 된 지금, 다시 조사하며 살펴보니 너무 재밌어요, 까르띠에가 완전히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여러분들도 알게 되면 좋아하게 되실 거예요!
Ps. 원래도 자료 찾고 글 적는 것 좋아하는데, 뭔가... 적성 찾은 느낌인데 너무 자주 올리는 것이 아닌가 몰라요.
1. 까르띠에의 탄생과 역사
창립자, 루이-프랑수아 까르띠에
1847년, 28세의 루이-프랑수아 까르띠에(Louis-François Cartier)는 스승 아돌프 피카르(Adolphe Picard)의 파리 몽토르게이 거리 29번지의 작은 공방을 인수하며 까르띠에의 역사를 시작했어요.
사실 루이-프랑수아는 빨래하는 어머니와 금속 노동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다이아몬드와는 거리가 먼 집안 출신이었다고 해요. 하지만 견습공 시절부터 빛나는 재능을 보였고, 결국 자신만의 메종을 열게 됩니다.
"왕의 보석상" 별명의 유래
1902년, 영국 에드워드 7세가 대관식을 앞두고 까르띠에에 27개의 티아라를 주문했는데요.
이때 에드워드 7세가 직접 까르띠에를 "왕의 보석상, 보석상의 왕"이라고 불렀고, 이 별명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이후 까르띠에는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스페인 왕실, 포르투갈 왕실 등 전 세계 15개 왕실의 공식 납품업체가 됨으로써, 진짜 왕들의 보석상이 되었답니다.
2. 까르띠에 가문 경영의 시기 — 4대에 걸친 117년의 가족 경영 신화
럭셔리 브랜드가 창업자 1대에서 2대, 3대로 넘어갈 때 흔들리거나 매각되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구찌는 가문 내분으로 1993년 외부 자본에 팔렸고, 버버리도 창업자 사후 가문 경영이 금방 끝났거든요.
그런데 까르띠에는 4대 - 117년(1847~1964) 동안 가문이 경영하면서 파리 로컬 공방을 글로벌 메종으로 키워냈어요.
게다가 각 세대가 "내 역할"을 확실히 해낸 드문 케이스예요!
물론, 6대째 가문 경영 중인 에르메스나, 4대째 가문 경영 중인 파텍필립도 있지만, 까르띠에처럼 세대 별 역할이 뚜렷했던 경우는 흔치 않더라구요.
1대: 루이-프랑수아 까르띠에 (1819-1904) - 까르띠에 브랜드의 씨앗을 뿌린 창업자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스승의 공방을 인수하며 까르띠에를 시작한 인물이에요.
1850년대 나폴레옹 1세의 조카 마틸드 공주가 첫 왕족 고객이 되었고, 나폴레옹 3세의 황후 외제니가 고객이 됨으로써 왕실 보석상으로 명성을 쌓았지만 그가 사망했던 1904년까지는 파리 중심의 소규모 메종으로 운영되었어요.
2대: 알프레드 까르띠에 (1841-1925) - 안정적인 시스템 구축, 기본에 집중한 관리자
루이-프랑수아의 아들로, 화려한 혁신보다는 안정적인 시스템 구축에 집중한 인물이에요.
1874년 경영권을 승계받아 메종을 체계화하고, 영국·스페인 왕실 등 유럽 왕족 고객을 확대했어요.
1899년에는 파리 Rue de la Paix 13번지(현재 본점)로 이전하며 상징적인 본사를 마련했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세 아들(루이, 피에르, 자크)에게 글로벌 비전을 교육했다는 거예요.
혁신가라기보다는 연결자 — 1대의 유산을 지키면서 3대가 날아오를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줬어요.
3대: 삼 형제의 황금기 - 파리/ 런던/ 뉴욕에서 날아오르는 까르띠에
알프레드의 세 아들 루이, 피에르, 자크가 각자 파리·런던·뉴욕을 맡아 글로벌 제국을 완성한 시기입니다.
자료 찾아보면서 이때 까르띠에가 너무 재밌어서 이 글을 적어야겠다 생각했어요! (저만 재밌을지도....?)
알프레드... 참 자식 농사 잘 지었네!!!!
첫째 아들, 루이 까르띠에 (1875-1942) - 파리 담당/ 디자인과 창의의 천재
"Never copy, only create."이라는 명언을 남긴 루이는 파리에서 디자인과 창작을 총괄하며 까르띠에의 예술적 정체성을 확립한 인물이에요.
현재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산토스, 탱크, 베누아 모델을 출시하고, 하단에 서술할 - 잔 투생을 영입하여 팬더 모티프를 도입하는 것은 물론, 주얼리 메탈로서 플래티넘(저의 최애 소재)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답니다.
파리에서 디자인과 창작을 총괄하며 까르띠에의 예술적 정체성을 확립했어요.
둘째 아들, 피에르 까르띠에 (1878-1964) - 뉴욕 담당/ 비즈니스의 귀재
1909년 뉴욕 5번가에 지점을 열며 미국 시장을 개척한 피에르는 1917년 뉴욕 5번가에 있는 모튼 플랜트(Morton Plant)의 르네상스 양식 저택을 눈여겨봤다고 해요.
그런데 플랜트의 아내 메이지가 까르띠에 매장에 있던 128알의 천연 진주 목걸이에 완전히 반해버린 거예요!
당시 이 목걸이의 가치는 100만 달러(현재 가치로 약 2,500만 달러!)에 달했는데, 비즈니스의 귀재인 피에르는 모튼과 전설적인 빅딜!을 통해 진주 목걸이 + 약간의 현금을 저택과 교환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1909년에 까르띠에가 뉴욕에 처음 지점을 열었고, 1917년에 이 건물로 이전한 거예요! 이 건물이 현재까지도 까르띠에 뉴욕 본점이랍니다.)
월스트리트 거물들과 미국 상류층을 고객으로 만들며 까르띠에를 상업적으로 성공한 글로벌 브랜드로 키웠어요.
1964년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117년 가문 경영도 막을 내렸죠.
셋째 아들, 자크 까르띠에 (1885-1942) - 런던 담당/ 보석에 정말 진심이었던 젬스톤 마니아
1902년 런던 지점을 운영을 주도하며 에드워드 7세 대관식 티아라를 제작하고, 왕의 보석상, 보석상의 왕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영국 왕실 워런트를 획득)
하지만 자크가 기여한 것은 글로벌 보석 소싱 네트워크를 구축한 거예요.
인도 마하라자, 중동 왕족들과 관계를 맺고, 인도·스리랑카 등지에서 최고급 보석을 직접 소싱했죠.
역사상 가장 화려한 주얼리 프로젝트 중 하나인 파티알라 목걸이도 자크의 작품이에요.
4대 이후: 가문 경영의 종료
3대 삼 형제 중 루이와 자크가 1942년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어요.
피에르와 4대 멤버들이 가업을 이어갔지만, 3대처럼 혁신적인 업적보다는 안정적 유지에 머무르게 되었고, 둘째 아들 피에르가 사망하면서 로버트 호크 컨소시엄에 인수되었다가, 1993년 리치몬트 그룹이 인수하여 현재까지 운영 중이랍니다.
117년 가문 경영의 막이 내렸지만, 4대에 걸쳐 다져진 "왕의 보석상" DNA는 지금도 까르띠에의 핵심인 것 같아요!
3. 까르띠에의 영혼, 잔 투생(Jeanne Toussaint)
"라 팬더(La Panthère)" — 팬더 같은 여자
까르띠에를, 특히 주얼리를 이야기하면서 잔 투생을 빼놓을 수는 없겠더라구요.
1913년 까르띠에에 입사해 1933년부터 1970년까지 하이 주얼리 총괄 디렉터를 맡았던 전설적인 인물이에요.
루이 까르띠에는 그녀를 "쁘띠뜨 팬테르(Petite Panthère, 작은 팬더)"라고 불렀는데, 그녀의 강인하고 독립적인 성격, 그리고 팬더 가죽 코트를 즐겨 입었던 스타일 때문이었대요.
잔 투생의 키워드와 일화를 소개할게요.
키워드: 세계 최초 여성 하이 주얼리 디렉터
프랑스에서 여성 참정권도 없던 시절(1945년까지!)이었음에도, 잔 투생은 세계적인 주얼리 하우스의 총괄 디렉터가 되었어요.
그녀는 주얼리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여성의 힘과 독립성을 표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믿었죠.
2차 대전 중 저항의 상징, "갇힌 새" 브로치
2차 대전 나치 점령기에 잔 투생은 점령당한 프랑스를 상징하는 새장에 갇힌 새 모양의 브로치를 만들었어요.
이 작품 때문에 게슈타포에 불려 가 심문을 받기도 했는데, 코코 샤넬의 도움으로 풀려났대요.
재미있는 것은, 잔 투생과 코코 샤넬은 평소 라이벌 의식도 있었고 애증에 관계였다는 썰이 있습니다.
여성의 참정권, 사회 참여에 관심이 있던 두 여인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은 거죠.
종전 후에는 새장 문이 열리고 새가 자유롭게 날아가는 "해방된 새(Oiseau Libéré)" 브로치를 만들어 프랑스 해방을 축하했어요.
주얼리 작품이 사회에 반영되던 시기.. 너무 멋지다는 생각이...!
4. 알아두면 쓸모 있는 까르띠에 잡학사전
1) 까르띠에 런던 사무실은 드골 장군의 아지트였다
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가 나치에 점령되었을 때, 루이 까르띠에는 런던 사무실을 샤를 드골 장군의 "자유 프랑스" 운동 본부로 제공했어요. 드골의 많은 전시 연설문이 까르띠에 런던 본부에서 작성되었대요.
2) 블루 카보숑의 비밀
까르띠에 시계 크라운에 박힌 시그니처 파란 보석!
사실 모든 모델에 같은 보석이 들어가는 건 아니예요.
| 골드/하이 주얼리 모델 | 천연 사파이어 |
| 스틸/엔트리 모델 | 합성 스피넬 |
둘 다 까르띠에의 시그니처 블루를 표현하기 위해 엄선된 보석이지만, 이 차이를 알면 '아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죠! 😉
🌟 번외편: 유럽 4대 주얼리 가문
까르띠에를 알았으니, 유럽을 대표하는 4대 주얼리 가문도 함께 알아볼까요?
이 네 가문은 19세기부터 왕실과 귀족들의 보석을 만들어온 전설적인 하우스들이에요. 까르띠에가 그중 하나죠!
1. 까르띠에 (Cartier)/ 프랑스 - "왕의 보석상, 보석상의 왕"
오늘 메인으로 다룬, 저의 최애 브랜드 까르띠에!
시계와 주얼리 모두 강한 게 까르띠에의 특징이에요.
| 항목 | 내용 |
| 창립 | 1847년, 파리 |
| 창립자 | 루이-프랑수아 까르띠에 |
| 대표 고객 | 영국 에드워드 7세, 15개 왕실 |
| 시그니처 | 팬더 모티프, 산토스/탱크 시계, 러브/트리니티 주얼리 |
| 현재 소속 | 리치몬트 그룹 |
2. 불가리 (Bvlgari)/ 이탈리아 - "로마의 화려함을 주얼리에 담다"
"색채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불가리.
까르띠에가 우아하고 클래식하다면, 불가리는 대담하고 화려한 것 같아요.
특히 컬러 젬스톤(에메랄드, 사파이어, 루비)을 과감하게 조합하고, 제 사랑 세르펜티(뱀) 컬렉션이 아이코닉해요
| 항목 | 내용 |
| 창립 | 1884년, 로마 |
| 창립자 | 소티리오 불가리 (그리스 출신 은세공인) |
| 대표 고객 | 엘리자베스 테일러, 소피아 로렌 |
| 시그니처 | 세르펜티(뱀), 비제로원, 대담한 컬러 스톤 사용 |
| 현재 소속 | LVMH 그룹 |
3. 쇼메 (Chaumet)/ 프랑스 : "황후의 보석상"
저의 차애 브랜드 쇼메....
4대 가문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해요. 창립자 니토가 나폴레옹의 공식 주얼러가 되면서 명성을 얻었고, 특히 티아라의 대가로 유명해요. 나폴레옹이 조제핀 황후를 위해 주문한 티아라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전 세계 왕실 티아라의 상당수를 쇼메가 제작했대요.
조용하고 우아한 프렌치 감성을 좋아한다면 쇼메가 딱이에요!
| 항목 | 내용 |
| 창립 | 1780년, 파리 |
| 창립자 | 마리-에티엔 니토 |
| 대표 고객 | 나폴레옹 황제, 조제핀 황후 |
| 시그니처 | 티아라, 조세핀 컬렉션, 비 마이 러브 |
| 현재 소속 | LVMH 그룹 |
4. 부쉐론 (Boucheron)/ 프랑스 : "방돔 광장의 선구자"
방돔 광장에 첫 번째로 입점한 주얼러예요.
1893년, 프레데릭 부쉐론은 "광장에서 가장 햇빛이 잘 드는 곳"을 골라 매장을 열었는데 그게 바로 방돔 광장!
자연과 동물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이 특징이에요. 뱀, 올빼미, 공작새 같은 동물 모티프를 우아하게 표현해요.
부쉐론은 "입는 사람의 개성을 살려주는 주얼리"를 추구해요. 화려하지만 과시적이지 않은, 그런 미묘한 밸런스가 매력적인 브랜드입니다. (제 결혼반지가 부쉐론인데.. 우예 4대 브랜드랑 다 인연이 있네요?)
| 항목 | 내용 |
| 창립 | 1858년, 파리 |
| 창립자 | 프레데릭 부쉐론 |
| 대표 고객 | 러시아 황실, 이란 샤 |
| 시그니처 | 세르펑 보엠, 카트르, 동물 모티프 |
| 현재 소속 | 케링 그룹 |
Ps.
까르띠에와 쇼메, 부쉐론은 프랑스(파리) 출신, 불가리만 이탈리아(로마) 출신이에요. 그래서 불가리만 분위기가 확 다른 느낌이에요!
오늘은 1847년 파리의 작은 공방에서 시작해 "왕의 보석상"이 된 까르띠에의 주역, 일화들을 알아봤습니다.
저는 까르띠에를 만든 수많은 인물 중에 잔투상과 루이 까르띠에의 반짝이는 디자인, 피에르 까르띠에의 수완에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요.
4대 117년에 걸친 가문 경영의 역사, 그리고 유럽 4대 주얼리 가문까지!
알고 나니 손 위의 까르띠에가 더 특별하게 보이지 않으신가요?
저는 시계 컬렉션과 주얼리 컬렉션의 일화로 또 곧 돌아오겠습니다!
오늘도 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